※ 본 글은<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온라인 매거진 '와'> 연재된 네스트포넥스트 김수향 대표의 글입니다.
시민은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중과는 대비되는 단어입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들 비율이 높아야 하기에, 스스로가 시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시민의식’과 끊임없는 '시민교육'이 필요합니다. 시민교육 시리즈를 통해 1) 시민교육이 활용되고 있는 그룹(시니어 그룹) 2) 공교육 및 시스템 안에서의 시민교육 3) 시민 정신의 활용의 장(場), 지역공동체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많은 옷을 가지고 선택적으로 그 옷을 입고 벗으며 살아간다. 부모라는 옷 혹은 자녀의 옷, 때론 갑의 옷 혹은 을의 옷, 때론 주인의 옷 혹은 손님의 옷…. 이 중에서 우리가 입고 있으면서도 망각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시민’이라는 옷이다.
‘시민’은 우리가 선택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한 국가의 구성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입도록 요구되는 옷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중’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시민’의 옷을 벗어던지고자 한다. 혹은 시민성을 ‘국민성’과 착각해 우리나라 국민 만이 갖는 특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시민’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자발적이고 보편적이지만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중과는 대비된다. 한 나라가 건강한 사회로 성장하고 유지 존속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들의 비율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가 시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일컬어 ‘시민교육 혹은 시민성 교육’이라고 일컫는다.
시민교육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다. 과도기 국가들이 그러하듯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에서 얻어낸 정치적 성과로서의 ‘시민’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시민성 교육’에는 ‘민주시민’이라는 단어가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질적인 의미의 시민교육은 이보다 훨씬 그 폭이 넓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의 시민성 교육의 최종 목표는 ‘능동적이고 교양 있으며 책임감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Social and moralresponsibility)을 갖고 공동체 참여(Community involvement)를 하며 정치적 문해력(Political Literacy)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그 1차 목표이다.
대표적인 시민교육의 메카 영국의 교육 목표와 철학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시민교육은 ‘공동체(LocalCommunity)’가 필요하며 이것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또한 도덕적인 책임감을 갖는 교양 있는 사람을 양성하며, 정치적으로 현세를 읽고 필요한 정책을 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갖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시민성 교육’의 큰 골자인 것이다.
이것을 기본으로 3회에 걸쳐 1) 시민교육이 활용되고 있는 그룹(시니어 그룹) 2) 공교육 및 시스템 안에서의 시민교육 3) 시민 정신의 활용의 장(場), 지역공동체 등 세 가지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회에서는 시민교육이 활용되고 있는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하겠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나라들을 통해 이 주제에 보다 명확하게 접근해 보자. ‘잘 교육된 시민이 사는 곳’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나라들을 생각하면 그 답이 좀 더 명확해진다. 싱가포르는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거리에 버리는 행동 등을 국가가 엄중하게 관리하며 처벌한다. 이 나라의 시민성은 그야말로 국가가 다듬고 만든 하나의 훌륭한 프로젝트라고 하겠다. 국가가 제도를 통해서 시민의식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착상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인 기준의 ‘시민의식’을 ‘시민성’으로 대변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 또한 시민교육의 단위가 국가적 차원의 것이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시민의식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게 자리 잡는 나라로 영국을 꼽는다. 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례 중에서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갖는 그룹은 영국의 ‘시니어’이다. 시민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평생교육(Adult education)은 각 지역 단위의 Adult learning center(성인학습센터)를 중심으로 행해진다. 저렴한 금액으로 취미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여가와 여생을 여유롭게 보낸다.
그런데 이런 교양 수업이 영국 시민교육의 핵심은 아니다. 영국은 좀 더 차별화된 시니어들의 활동에서 그 핵심을 찾아볼 수 있다. 수잔나 램지(Susanna Ramsey)는 영국의 여느 사람들처럼 공원을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었다. 영국 킹스턴에 위치한 리치몬드 공원(Richmond Park) 근처에 살던 그녀의 일상 중 하나는 그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리치몬드공원은 자연의 생태 그대로를 보존하며 여러 동물들이 함께 생존하고 있는 곳이다. 20년 넘게 그곳을 산책한 그녀가 남달랐던 것은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연사하거나 사고로 죽은 동물들의 사체나 변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고 월급이 주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무료로 주어지는 자연의 혜택과 영국 시민으로서 그 혜택을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하루 이틀 되었던 일이 한 달 두 달이 되어 몇 년이 되어가는새,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발견하였다. 그 일은 다름 아닌 박제를 만드는 일. 상태가 괜찮은 동물들은 박제로 만들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사체가 썩은 후의 뼈를 조립해두었다. 부엉이가 싸놓은 변에서 발견된 또 다른 먹이사슬의 희생자인 다른 동물의 뼈, 늙은 사슴에게서 빠진 위풍당당 뿔 등 그 모습과 이야기들도 다양했다.
이렇게 수집한 수많은 자료들을 창고를 만들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지역 사회에 점점 소문이 나서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오는 일들이 생겼다. 누구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혹은 번거로울 수 있는 일이 한 시니어의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소중한 자연도 역사 속에서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진지하고 흥미 있어 한다. 걸음마를 뗀 그때부터 수없이 찾은 지역의 한 공원에서 언젠가는 마주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리치몬드 공원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며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고 그녀는 말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Rambler(램블러, 단체를 이루어 재미 삼아 시골 지역을 걷는 사람) 그룹이 있다. 이들은 해변이나 시골길 등을 따라 몇 시간이고 걸으면서 그 풍경을 즐기고 ‘건강’까지 즐긴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평한 평지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국인이 즐겨 하는 활동 중에 걷기(Walking)가 있다는 것은 놀라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목표로 하는 ‘건강’과 ‘여가 즐기기’의 이면에는 또 다른 시민교육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램블러의 구성원 중 시니어그룹이 시작 전 항상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봉투. 이들은 단순히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걸으면서 보이는 쓰레기를 줍는다. 어느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단체에서 제안한 일도 아니고 캠페인도 아니다. 걷다 보니 쓰레기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처음 이 그룹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간단한 안내 등을 도와주는 업무의 중심에도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아름다운 자신의 국토를 돌아보며 좋은 곳을 발굴하는 의미도 있고 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의미 이외에도 내가 속한 자연과 나라는 내가 지키고 아끼겠다는 시민정신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고 그 가치를 전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인 것이다.
또 다른 사례 역시 영국 시니어들의 자발적 참여가 잘 드러난다. 영국은 매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Bike toschool)”이라는 캠페인을 펼칠 만큼 아이들의 건강에도 관심이 많다. 아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보호자가 없으면 통학을 할 수 없는 영국은 아이들을 차로 실어다 주고 오는 일들이 많은데, 걷거나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자전거 통학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맞벌이 부부나 자전거로 통학을 안내해 줄 마땅한 어른이 없는 경우다. 이런 경우 역시 지역 사회의 시니어 그룹들이 자원봉사를 한다. 아침에 집에 찾아가 인도와 차도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과 수신호를 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학교까지 무사히 통학할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많은 시민 교육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시민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밝힌 영국의 시니어 그룹 사례를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세대 간의 전수를 통해 이뤄지는 시민교육이라는 점이다.
세대 간의 소통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시니어 그룹의 시민정신을 토대로 한 봉사는 세대와 세대 간의 전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영국의 시니어 그룹들도 마을 어른들의 봉사와 희생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며 내가 어른이 되면 사회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그런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노후를 보낼 것이다. 즉 이들의 이러한 봉사와 섬김의 이면에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를 어떻게든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시민 의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민 정신의 기저에는 ‘자발적 참여’가 있다는 것이다. 참여는 여러 정치적인 토론에 목소리를 내는 것,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선거와 투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정책 결정을 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 등 다양한 정치적인 견해와 접근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역과 다음 세대를 위해 직접 일을 만들어 참여하고 시행하는 참여야말로 시민교육이 기대하는 핵심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시니어 그룹의 시민교육은 교양과 여가생활을 잘 보내기 위한 그리고 자기 계발을 위한 개념의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민 교육이 한 개인의 행복이나 권리 추구가 아닌 나와 타인 혹은 나와 내가 속한 사회와의 관계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자발적 참여를 통한 사회 변혁이 시민교육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글쓴이 : 김수향 대표(네스트포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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